FTA 의약품 협정문 ‘허점투성이’…논란 불가피 ‘의약품 위원회’ 국내 의약품정책 쥐락펴락 지난 25일 공개된 한ㆍ미 FTA 의약품분야 협정문이 애매한 문구와 불확실한 내용으로, 향후 협정문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협정문은 대부분의 핵심사항들을 양국이 설치할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위원회’로 떠넘기고 있어, ‘합의한 것 없는 합의문’이란 지적도 함께 받고 있다.
현재 협정문 해석에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신약의 가치인정 △독립적 재심 기구 △허가-특허 연계 △GMP, GLP 상호인정 등 크게 4개 부분이다.
◆ ‘신약 최저가 보장’ 논란 재연되나?
‘신약의 가치인정’ 부분에 대해 협정문은 “특허 의약품 및 의료기기의 가치를 자국이 제공하는 급여액에 있어 적절히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적절히’라는 표현이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연합은 “의약품 가격결정에 있어 A7 최저가 보장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경쟁적 시장도출’ 가격의 보장을 명문화함으로써 사실상 선진국 평균약값을 한국에서 적용하는 것을 수용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반면 정부는 “이 조항은 우리 제도 내에서 특허의약품의 가치를 적절한 방법을 통하여 인정한다는 의미”라며 “우리나라는 의약품경제성평가 등 객관적 기준을 바탕으로 제약회사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간 직접 협상을 통해 신약의 가격을 결정할 예정이므로 ‘적절히 인정한다’는 문안과 합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로선 제약사-공단 간의 협상 과정이 있더라도, 그것이 신약일 경우 적정 수준의 약가가 ‘보장’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가치를 적절히 인정하기로 한 협정문상의 규정에 따라, 미측 업계는 공단과의 가격협상 과정에서 이 규정을 근거로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의 협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의 말대로 경제성평가를 통해 약가 산정을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진행한다면, 우선 특허 만료 신약과 제네릭 의약품 간의 차별부터 없애야 이치에 맞는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 이의신청기구에 ‘독립성’ 부여…, ‘약제비 적정화 방안’ 포기?
정부는 이의신청기구와 관련, 협정문 상에서 ‘독립적 재심 기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정부는 협정문 상의 ‘독립적’이란 표현에 대해 “보건 당국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그간 정부가 이의신청기구의 ‘독립성 보장 여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 왔다는 점이다.
유시민 前 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8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 한ㆍ미 FTA 중간보고 자리에서 “미국이 주장하는 ‘독립적’이라는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의신청기구는)적어도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에 두는 것이 맞다”고 언급, 이의신청기구의 권한 및 지위에 대해서는 정부의 통제 하에 둘 것임을 설명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이의신청기구의 독립성 부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다가, 실제 협정문에는 독립성 부여를 명시한 것. 물론 기구의 투명성 및 객관성 유지를 위한 ‘독립성’은 필요할 수 있으나, 정부가 약가에 직접 관여한다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또한 정부는 ‘재심’이라는 표현에 대해 “독립적 재심 절차는 민원인의 불만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재검토해보자는 취지”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사실상 원심을 번복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결국 제약사를 포함한 모든 이해당사자에게 급여 관련 모든 의사결정기구에 대한 접근을 허용한 상태에서 이의신청기구 조차 정부와 독립된 영역으로 분리한다면, 정부는 약가 조절 능력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위원회’ 국내 의약품정책 쥐락펴락
협정문은 허가-특허 연계와 GMP, GLP 상호인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이라든가 실행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명시하고 있지 않다.
우선 허가-특허 연계와 관련, 협정문은 제네릭 출시 지연에 대해 “당사국이 ‘조치’를 취한다”고 짧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정부는 GMP, GLP 상호인정에 대해서도 협상 타결 이전에는 마치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실제로는 그 가능성만 열어뒀을 뿐 구체적인 명문화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이러한 불명확한 협정문 보다 더욱 우려되는 지점은, 양국 간 논란이 예상되는 대부분의 의제들을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될 경우, 추상적으로 정리된 협정문 문구보다는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위원회’에서의 논의가 사실상 국내 의약품정책을 좌지우지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사실상 한국정부가 다국적 제약회사 및 의료기기 회사에 대한 규제정책을 미국정부의 허락 없이는 집행하기 힘들도록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국내 보건의료계 관계자들 역시 “정부가 협상을 하고 합의를 했다는데 도대체 무엇을 협상하고 합의했는지 모르겠다”며 “FTA 협상이 마무리됐음에도 미국과의 제2의 협상을 진행해야할 처지”라고 지적, 향후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위원회’를 둘러싼 갈등이 한ㆍ미 FTA 협정에서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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